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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건강칼럼 (563)... 강릉의 명소 탐방기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참소리박물관 Edison과 오죽헌 李珥


지난 4월 12일 ‘58개띠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생 70여명과 함께 강릉지역의 오죽헌, 경포대, 참소리박물관 등 명소를 방문했다. 강릉시 경포로 393 소재 참소리축음기ㆍ에디슨ㆍ영화박물관(Charmsori GramophoneㆍEdisonㆍFilm Museum)을 방문하여 수많은 전시물을 관람하면서 발명왕 에디슨(Edison)이 초년병 의사에게 보낸 격려의 메시지와 자필 서명의 편지를 담은 액자(frame)를 발견하고 보건학도(保健學徒)로서 매우 반가웠다.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doctor of the future will give no medicine but will interest his patients in the care of the human frame, in diet, and in the cause and prevention of disease. Thomas A Edison” 에디슨은 단순히 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아닌 인간애로서 환자를 돌보고 식이(食餌)와 질병 예방에 관심을 기우리라고 권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憲章(Constitution)에서 ‘健康’의 정의를 “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로 명기하고 있다. 즉,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고 허약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


토마스 엘바 에디슨(Thomas A. Edison)은 1847년 미국 오하이오주(州) 밀란에서 태어났으며, 병약(病弱)했지만 호기심이 많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병약한 몸 때문에 남들보다 늦게 학교에 입학했으며, 그에게 암기 위주의 학교 교육은 맞지 않았다. 결국 입학한 지 석 달 만에 퇴학을 당하고 그때부터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결혼 전에 학교 교사 경험이 있는 에디슨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많은 책을 읽게 하였다. 에디슨은 기꺼이 책을 읽었고, 열네 살 때에는 섹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을 모두 독파할 만큼 수준 높은 독서를 했다. 에디슨이 가장 좋아한 책은 리처드 그린 파커가 쓴 <자연과학과 실험과학 입문>이었다. 이 책은 1850년대의 물리학 등 과학 분야를 소개한 것으로 간단한 실험들이 소개되어 있어 호기심 많은 에디슨에게는 꼭 맞는 책이었다.


우리는 흔히 에디슨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말하는 기계’ 축음기(蓄音機), 인류를 빛의 왕국으로 이끈 전구(電球), 그리고 20세기 영화산업의 시작을 알렸던 영사기(映寫機)를 꼽는다. 하지만 위대한 세 가지 발명품에 비해 크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전기 생활용품은 100여면 전 에디슨으로부터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디슨이 ‘발명의 왕’이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은 창조적 재능뿐만 아니라 숱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낙천성(樂天性)과 자신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자신감(自信感)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디슨이 남긴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그의 발명 인생을 지탱해준 거대한 뿌리였다.


에디슨이 남긴 명언(名言)에는 “나의 발명은 한 가지 일에 무수한 경험을 쌍아 올린 것이다.” “성공이란 그 결과로 측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에 소비한 노력의 총계로 따져야 할 것이다.” “천재란 노력을 계속할 수 있는 재능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과 작업을 투입한다면, 때로는 실패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등이 있다. 


참소리축음기ㆍ에디슨ㆍ영화박물관(Charmsori GramophoneㆍEdisonㆍFilm Museum)은 설립자 손성목 관장이 50여 년 동안 세계 60여 개국을 방문하여 수집한 발명왕 에디슨의 발명품 등 5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 특화박물관으로 세계 최대규모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 ‘소리’ ‘빛’ ‘영상’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손성목 관장이 여섯 살 때 부친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포터블 축음기(콜롬비아 G241)를 6.25전쟁 중 1.4후퇴 때 함남 원산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피난길에도 간직하고 와서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목조건물인 오죽헌(烏竹軒)은 우리나라 주택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건립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단종(端宗) 때 병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최응현(崔應賢, 1428-1507)의 고택이라고 불리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15세기 후반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4칸 크기의 대청과 1칸 반 크기의 온돌방, 그리고 반 칸 너비의 툇마루로 된 단순한 평면 건물이다. 1975년 오죽헌정화사업으로 문성사(文成祠)와 기념관이 건립되면서 안채와 곳간 및 사주문이 해체되었다. 1995년 오죽헌 뒤의 고택이 다시 복원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오죽헌은 조선 사대부(士大夫) 주택의 별당(別堂)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오죽헌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자녀 4남 3녀 중 3남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태어난 집이다. 조선 중기 강릉 출신의 여류 예술가로 시ㆍ서ㆍ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난 신사임당의 이름은 신인선(申仁宣)이며, 사임당은 당호(堂號)이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19세에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였다. 신사임당은 마흔여덟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사임당이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좋은 환경이 있었다. 현철한 어머니의 훈조를 받을 수 있는 환경과 그녀의 예술성을 북돋아 준 남편이 있었다. 1868년 강릉부사로 부임한 윤종의(尹宗儀)는 신사임당의 글씨를 후세에 남기고자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발문을 적었다.


강릉시는 학문과 효성, 덕행을 겸비하여 한국 여성의 표상(表象)이 되는 신사임당의 얼을 높이 기리고, 후손들에게 널리 선양하고자 ‘신사임당상(申師任堂賞)을 1975년에 제정하여 강원도 출신 여성에게 수여하고 있다. 신사임당상 심사위원장은 강원도 정부 부지사가 맡으며, 위원 15명은 도지사가 위촉한다. 


신사임당의 자녀들 중 셋째 아들 이이(李珥)가 그의 훈도와 감화를 제일 많이 받았다. 신사임당은 검은 용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胎夢)을 꾼 연유로 율곡의 어릴 적 이름은 현룡(玄龍)이라 하였으며, 산실은 몽룡실(夢龍室)이라 하여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대학자 이이는 신사임당의 행장기를 저술하면서 예술적 재능, 우아한 천품, 순효한 성품 등을 밝히고 있다.


신사임당이 죽은 뒤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여 고뇌하던 율곡은 19세 되던 해 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을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역사에서 입산 경력을 가진 사대부는 김시습과 이이 두 사람뿐이다. 율곡은 성학집요, 격몽요결, 김시습전, 학교모범 등을 저술했다.


조선의 성리학이 눈부시게 꽃을 피우며 전성기를 이룬 중심에는 退溪(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가 있었다. 퇴계가 새로운 시대사상인 성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면, 율곡은 퇴계가 이룩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성리학을 토착화했다. 성리학은 조선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틀을 잡아 주었으며, 중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끼쳤다.


율곡은 시무육조(時務六條), 즉 서둘러 해야 할 여섯 가지 일을 글로 써서 선조(宣祖)에게 바쳤다. 그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으니 먹는 것이 우선되고 나서야 교육도 가능하다”고 하여 제일 먼저 민생의 평안을 주장하였다. 또한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비하여 10만 양병(養兵)을 주장하였으나 그를 시기하던 대신들이 반대하여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에 대비하지 못했다.


율곡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어 있는 조정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으나 동인이나 서인이나 율곡을 몰아세우기는 마찬가지였다. 율곡은 48세가 되던 해에 어수선한 정계를 떠났으며, 이듬해 1584년(선조 17년) 정월에 별세했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563). 201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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