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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건강칼럼 (677)... 인생 후르츠, 소박한 삶의 미학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행복한 슬로 라이프(Slow Life)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열린다/ 차근차근, 천천히...”


이 시(詩)구절 같은 글귀는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신촌에 있는 소극장 필림포럼에서 관람한 일본 영화 <인생 후르츠>의 내레이터(narrator)가 간헐적으로 들려주는 내용이다. 영화 주인공인 남편(츠바타 슈이치)은 90세, 아내(츠바타 히데코)는 87세로 부부 나이를 합치면 177살이다. 한편 우리 부부는 필자가 80세이며 아내(前고려대 교수)는 75세이므로 합치면 155세가 된다. 영화 주인공 부부는 65년을 함께 살았으며, 우리 부부는 내년에 결혼 50주년 금혼식(金婚式, Golden Wedding)을 맞게 된다.


제91회 키네마준보 베스트 10 문화영화부문 1위를 차지한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 인생은 감미로워라)>는 후시하라 켄시가 감독을 맡아 2017년 1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documentary film, 記錄映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12월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키키 키린 여사의 내레이션(narration)과 시골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영화 줄거리는 90세 건축가 할아버지와 87세 못하는 게 없는 슈퍼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국내에는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 <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등의 책을 통해서도 알려진 노부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츠바타 슈이치(Shuichi Tsubata, 1925.1.3 출생)는 도쿄대학 졸업 후 민간 건축설계사무소를 거쳐 일본주택공단에서 근무했다. 히로시마대학, 메이조대학, 미에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은퇴 후 프리랜스 평론가로 활동했다. 츠바타 히데코(Hideko Tsubata, 1928.1.18 출생)는 전통 있는 양조장 집 딸로 태어났으며 10대 때 부모를 여이고 28세에 결혼하여 딸 2명을 낳았다. 텃밭 농사로 대지에 뿌리내린 삶을 실천했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일본주택공단에 근무할 때 도시 설계를 맡을 정도로 유능했고, 그 설계 내용도 현재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자연친화적이고 바람이 통하고 자연이 함께하는 풍경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도시 건설이 자신이 설계한바 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그 신도시의 한 부분에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자연을 만들어서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를 실천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자연친화적인 설계를 나누고자 했다.


슈이치 할아버지가 90세 되던 해에 사가현 이마리의 정신과병원에서 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건축물을 짓고자 그에게 조언을 구하려 왔다. 그는 설계비용과 사례금 등을 일체 받지 않고 멋진 설계도를 건네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꾸준히, 시간을 모아서 천천히 하라”고 충고했다.


츠바타 부부의 집은 아이치현(愛知縣) 가스아이시(春日井市)의 고조지(高藏寺) 뉴타운 45,000의 인구가 모여 사는 이 도시의 변두리에 있다. 츠바타 부부의 서정적 삶은 1975년 뉴타운 안의 토지(약 300평)를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목조 단층집은 온갖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숲에 70여 종의 채소와 50여종의 과수(果樹)를 재배하면서 40년째 살고 있다.


평생 건축가로 살아온 슈이치 할아버지는 자연과 어우러진 주거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한편 히데코 할머니는 옛날부터 “음식은 곧 생명이다”라고 배웠기 때문에 음식 마련에 온 힘을 다했다. 텃밭을 가꾸고 남편을 위하여 음식을 조리하고 텃밭의 딸기를 수확하여 케이크도 만들었다. 서재에서 글을 쓰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남편은 아내가 만든 음식을 언제나 ‘좋아!’라고 대응하는 천상의 배필이다.


부부는 각각의 장소에서 각자의 즐거움을 발견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푸성귀를 딴 다음, 주스를 만들어 아침식사를 한다. 10시에 간식을 먹고 점심식사를 마치면 낮잠시간이다. 밭일 1시간, 낮잠 2시간이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사이사이에 뜨개질을 하거나 저장식(貯藏食) 등을 만든다.


히데코 할머니는 “물건은 없어도 어떻게든 살 수 있지만, 음식은 생명과 연결되므로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두 딸도 직접 만든 음식으로 길렀으며, 외손녀 하나코가 태어났을 때 결심한 것은 회사 일로 바쁜 딸을 도와 음식의 중요성과 새로운 맛을 하나코에게 전해줘야겠다는 것이었다. 도쿄에 사는 하나코는 방학이 되면 외갓집으로 와서 함께 생활하면서 매일 함께 식사를 하고 할머니 밭일도 도왔다.


슈이치 할아버지가 간(肝)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의사가 싱겁게 먹는 게 좋다고 하여, 슈이치 할아버지가 퇴원한 후 소금을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소금을 줄이면 어떤 병도 좋아진다는 병원 의사의 조언을 들은 후, 매일 먹는 식사를 준비할 때 소금을 거의 넣지 않고 여러 가지 요리를 시도했다. 남편은 아내가 조리한 음식을 정말 잘 먹었다.


영화 속 노부부의 삶이 천진난만하고 따뜻한 모습이며, 정원 곳곳에 놓여져 있는 손수 만든 노란 푯말에 적혀 있는 매시지에도 환영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목마른 작은 새들을 위해 마련한 수반(水盤)과 우편 배달원을 위한 감사 인사가 적힌 명패 등 자연과 이웃을 향한 배려가 공간 구석구석에 있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 서로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을 아끼고, 손녀들에게 보낸 편지들도 감동적이다.


그 감동에 영화 관람객들은 미소가 절로 흐르고, 마음에 힐링(healing)을 가져다준다. 츠바타 부부의 삶은 성실(誠實)과 무욕(無慾)이었으며, 죽은 뒤 시신은 화장하여 바다에 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스로 정한 의식과 규칙을 지켜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일상생활을 살찌우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 영화는 노부부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살아온 행복한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느림’이다.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은 삶의 질(質)에 대한 화두이다. 느림(slow)이라는 단어 속에서 풍요로움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지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경험을 하고 있다. 조급하고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므로, 슬로 라이프(slow life) 즉 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몸에 있는 생리적인 시계(생체시계)에 맞지 않고 빨리 가고 있는 것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 슬로 라이프이다.


곳곳에서 삶의 여유를 찾는 ‘느린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삶을 유지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는 슬로라이프 실천가들이 있으며, 잃어버린 관계의 회복을 위해 ‘쉼표’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건강을 위해 번화(繁華)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자연과 조화된 삶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또한 도시 전체가 빠른 속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슬로시티(Slow City)도 있다.


독일의 첫 슬로시티인 헤르스브루크(Hersbruck)는 독일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헤르스부루크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마트, 패스트푸드(fast food)식당, 자판기 등을 볼 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장터에서 판매되는 모든 육류와 채소류는 유기농 지역생산물이다. 이 지역 식당들은 생산과 조리과정에서도 친환경방식을 선택한 슬로푸드(slow food)를 제공한다. 이곳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인기는 ‘미니 주방’이라 불리는 ‘슬로푸드 수업’이다.


먹거리에서 시작된 ‘느림’의 실천은 주민들의 삶의 방식에 이어진다. 친환경적 난방, 건강한 삶을 위한 전신운동인 노르딕워킹(Nordic walking) 등 슬로라이프 물결은 헤르스브루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슬로라이프는 주민들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정신없는 일상생활에 제동을 건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편안함과 휴식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바쁘다’는 말의 한자는 ‘바쁠 망(忙)’을 사용하며, 이 글자는 마음 심(心)자에 망할 망(亡)자가 더해져 있다. 즉 마음이 바쁘면 망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한편 ‘쉼’을 뜻하는 한자는 ‘쉴 휴(休)’자인데, 이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여 휴식을 취하는 형상이다.


슬로라이프를 통하여 소소한 행복을 계속 얻을 수 있다. 행복한 순간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므로 인간의 삶의 목표는 지금 현재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편안할 것인가, 여유로울 것인가, 화목할 것인가 등을 화두로 삶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인생은 오래 익을수록 맛있으므로 차근차근, 천천히 맛있게 영글어야 한다.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677). 2019.2.9(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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