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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이야기

퇴계 이황, 철학자 영성가

MichaelM.Park 2017.07.12 22:36 조회 수 : 1

오늘(7월 12일)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3월 8일에 개강한 <연구강좌 사상사>의 1학기 종강이며, 2학기 강의는 9월 13일에 시작된다. 오늘은 연세대학교 강희복 교수(철학과)가 <시인적 철학자, 생태적 영성가 퇴계 이황>을 제목으로 2시간 강의를 했다.


우리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을 거의 매일 1000원권 지폐에 인쇄된 초상화를 통해 뵙고 있다. 퇴계의 생애는 조선 연산군-선조의 시대에 해당되며, 이 시대는 사화기(士禍期)라고 할 수 있다. 즉 1498년에 무오(戊午)사화가 일어났으며, 1504년 갑자(甲子)사화, 1519년 기묘(己卯)사화, 그리고 1545년에 을사(乙巳)사화가 일어났다.


퇴계는 16세기의 조선의 士禍라고 하는 시대적 비극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무척 괴로워하고 절망하였으며,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고 방향조차 상실된 상황에서 사회와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본성과 善惡의 문제데 관하여 깊게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생애는 크게 초년기-중년기-만년기 등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初年期는 출생으로부터 33세까지로서, 이시기는 유교경전을 연구하는 데 열중하였던 修學期라고 할 수 있다. 中年期는 34세무터 49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가면서부터 풍기군수를 사직할 때까지의 出仕期라고 할 수 있다. 晩年期는 50세부터 70세까지로 이 시기는 관직은 더욱 높아졌지만 끊임없이 사퇴하면서 고향에 돌아와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하였던 隱居 講學期라고 할 수 있다.


이황은 46세 때 스스로 호를 ‘退溪’라고 지었다. 퇴계는 2000편 이상의 漢詩를 썼으며, 꽃은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 퇴계는 65세 때 지식인이 아닌 일반백성도 삶 속에서 시를 노래하며 마음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국문시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을 발표했다. 퇴계는 1568년 12월에 당시 17세의 선조(宣祖)에게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지어서 올렸다.


유학(儒學)은 춘추전국시대에 공자(孔子, BC 551-BC 479)에 의하여 씨앗이 뿌려지고, 남송의 주희(朱憙, 1130-1200)에 의하여 새롭게 체계화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퇴계와 栗谷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유학은 기본적으로 주체의 변화와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仁을 실현하고 聖人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사상(仁學/聖學)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의 삶과 사상 속에는 感性과 理性과 靈性 혹은 철학적 사유(心과 理), 종교적 수행(敬), 예술적 표현(詩와 詩作), 사회적 실천(書院과 鄕約)이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으며, 이런 퇴계의 심미적 이성과 생태적 영성은 오늘날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 도덕적 수양(敬)과 심미적 체험(樂)의 통일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깊은 의미가 있다.


이에 퇴계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존재와 인간에 관한 철학적 사유(四端七情論과 聖學十圖), 도덕적 수양을 넘어 선 종교적 수행(敬), 漢詩와 陶山十二曲 등의 詩作을 통한 예술적 표현, 書院과 鄕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실천을 종합적(유기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후원못(Rear Pond)’에는 수련(water-lily)이, 그리고 연못 주변에는 배롱나무(목백일홍, crape myrtle) 꽃들이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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